언론 & 방송


[천안가볼만한곳 천안중앙시장] 깨 보다 진한 '사람향기'…4대 이은 '비결'

22분 전
   

[천안가볼만한곳 천안중앙시장]
깨 보다 진한 '사람향기'…4대 이은 '비결'


천안 중앙시장 골목에서 80년 째 대이어 가게 운영
'친절 · 신뢰'가 경영철학 인터넷 판매로 변화 시도

뻥튀기 가게, 포목전, 각종 생활용품을 파는 작은 가게들이 빼곡이 들어찬 사직동 중앙시장 인근의 좁은 골목.
이른 봄의 나른한 햇갈로 감싸인 골목길은 인적이 드물었지만 묘하게 사람냄새로 가득 찬 곳이었다.
빛바랜 낡은 간판들로 미루어 짐작하건데 아마도 꽤 오랜 시간 동안 자리를 지켜온 노포 (老鋪)들의 정겨움 때문이리라.
좁은 골목길을 가득 메운 건 봄볕뿐만이 아니다. 골목 안 구석구석을 감돌고 있는 것은 고소한 깨 볶는 냄새다.

냄새는 코를 통해 느껴지지만 기억을 자극한다. 햇빛에 바싹 마른 깻대를 알뜰히 털던 누군가의 야무진 손.
대목을 앞둔 주말이면 방앗간에 모여 떡이 다 되기를 기다리던 푸근한 얼굴들.
'삼대기름집'으로 가는 길은 잊고 있던 추억과 마주치는 여정이었다.

이 자리에서만 80년 째에요. 할아버지 고향이 개성이어서 처음엔 '개성집'으로
시작했다가 아버지 대엔 '천안제유소', 35년 전에 지금 이름인 '삼대기름집'으로
가게 이름을 바꿨어요. 지금은 제 아들까지 함께 일하고 있으니 엄밀히 말하자면 '사대기름집'이죠.
가게 앞에서 활짝 웃고 있는 현원곤, 전유산 씨 <사진 왼쪽부터>

속절없이 빨랐던 근대화 속에서 4대째 강버을 잇고 있는 곳이 몇 곳이나 될까.
정확히는 '사대기름집'이란 점을 특별히 강조하며 가게 곳곳을 보여주는 현원곤(66)씨에게서 노포를 유지하고 있는
숙련 장인으로써의 자부심이 한껏 느껴졌다.

삼대기름집의 현재 경영주는 창업주의 손자인 현 씨와 그의 아내 전유산(63)씨다. 아들 현상훈(41)씨가
2년 전에 가업을 잇기로 결정하고 나서며 지금은 세 가족이 기름집에서 함께 일하고 있다.

80년째 한 자리를 지키고 있으니 건물이 낡고 오래된 것은 분명하다. 얼마나 쓸고 닦았을까.
낡았지만 청결한 손 떼가 묻은 그곳을 사람들이 들고 나선다.
기름집 내부는 마치 작은 생활사 박물관을 연상케 한다.
낡고 오래된 수동 기계부터 최신식 전자기계들이 옹기종기 뒤섞여 기름집의 역사를 대변하고 있다.

현원곤 씨가 창업주인 고 현재성 씨의 그림을 들어보이고 있다.

"스무 살 때부터 아버지를 도와 기름집에서 일했어요. 그때는 다 나무로 만든 재래식 도구로 기름을 짰는데
장정 서너 명이 목틀을 힘껏 돌려서 기름을 짜냈지. 28년 전에 처음으로 전동기계를 들였는데,
그래도 깨한말을 짜려면 1시간 이상 걸렸단 말이에요. 요즘 최신식 기계로는 3분이면 짜요.
세상이 그렇게 바뀌었어요."

가게 이력을 설명하던 현 씨는 이윽고 가게 한 구석에서 30여 년 된 맷방석 두어 개를 꺼내보였다.
오래됐지만 잘 닦아 길이 든 맷방석이 곧 삼대기름집이었다.

'기름집'답게 온갖 것을 다 짠다. 들깨, 참깨, 땅콩, 호두, 살구씨, 복숭아씨, 해바라기씨,
호박씨, 산초, 피마자, 홍아씨, 달맞이 등등. 골목 터줏대감인 역사만큼이나 단골들이 대다수인데
주로 직접 길러 수확한 깨를 들고 온다. 하루 평균 70여 명의 손님이 찾고 20여 가마의 깨를 짠다.
보통 방앗간이나 기름집에서 하루 평균 많아야 2가마를 소비한다고 하니 삼대기름집의 영업 규모를 짐작케 한다.
현원곤 씨가 말하는 삼대기름집의 경영철학은 '신용과 친절'이다.

삼대기름집에서 인터넷 판매 중인 참기름과 들기름

"기름집이라고 해서 똑같은 맛을 내는 게 아니에요. 볶는 노하우, 좋은깨를 구별하는 안목이 있어야 해.
아마 손님들은 이 맛을 알고 오시는 게 아닌가 싶어요. 친절은 기본이죠.
손님들이 없으면 우리가 4대째 이 일을 해야 할 이유가 없어지는 게 아니겠어요."

현 씨의 이 같은 경영철학은 아들 상훈 씨에게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다.
묵묵히 물건을 나르고 기름을 짜내는 와중에 손님들 각자의 사정을 살뜰히 챙기는 것.
상훈 씨의 여유와 노련미는 가업을 잇고 있다는 자부심과 책임감에서 자연스레 배어나오는 것이었다.
'삼대기름집'은 최근 인터넷홈페이지를 오픈, 그간의 경영방식에서 나아가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이도 4대 상훈씨가 추진한 것으로 세대교체의 한 단면이다. 올해 초 홈페이지문을 열어 매출 변화를 따지기엔
아직 미미하지만 장기적으로 필요한 일이라고 상훈 씨는 설명했다.

"부모님이 가게를 잘 운영해 온 것에 이어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를 생각해 봤어요. 인터넷 판매는 그런 이유로
시작한 것이고 약 10여 년전부터 구상했던 일이에요. 최근에는 작업장 청결도를 높이기 위해서
해썹(Haccp)인증 교육도 받았어요. 오래된 가게지만 시대변화와 소비자의 요구에 맞추는 것,
그것이 앞으로 우리 삼대기름집이 5대, 6대를 이을 수 있는 길이자 의무라고 생각해요."

노포(老鋪)에는 마을의 역사가,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다. 생기고 없어지고를 반복하는 소비의 공간에서 소비자는 영원한
'행인1'이다. 수많은 행인들은 그들을 기억하는 오래된 공간에서야 이야기의 주인공이 된다.
그래서 노포가 소중하다. 삼대기름집은 최근 충남경제진흥원으로부터 '충남가계승계기업'으로 인증받아
설비지원 등을 받았다. 대를 잇는 가업의 가치를 소중히 지켜내는 일,
제2· 제3의 '삼대기름집'을 탄생시키는 지름길일 것이다.


관리자게시 게시안함 스팸신고 스팸해제 목록 삭제 수정 답변
댓글 수정

비밀번호 :

수정 취소

/ byte

비밀번호 : 확인 취소